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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유행

나팔바지에 장발, 그때 우리도 멋쟁이였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만 유행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우리도 나팔바지에 장발로 한껏 멋을 냈어요. 부모님한테 혼도 많이 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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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자랑

환갑에 다시 펜을 잡고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젊어서 못 배운 게 평생 한이었습니다. 예순이 넘어 다시 책을 펴는데 손이 떨리더군요. 합격증을 받던 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습니다. 배움에는 늦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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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전방에서 먹던 그 라면 맛을 아직도 못 잊습니다

혹한기 훈련 끝나고 반합에 끓여 먹던 라면. 눈 녹인 물로 끓였는데 세상에 그런 진미가 없었어요. 요즘 아무리 좋은 걸 먹어도 그 맛이 안 납니다. 배고픔이 최고의 반찬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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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결혼

맞선 자리에서 국수 그릇만 쳐다본 사람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난 게 다방도 아니고 국숫집이었습니다. 얼굴은 못 쳐다보고 국수만 후루룩 먹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 모습이 정직해 보였다더군요. 그 국수 한 그릇이 인연이 됐습니다. 벌써 오십 년이 다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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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유행

운동회 날의 고소한 참기름 냄새

어릴 적 운동회 날만 되면 새벽같이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눈을 뜨곤 했어요. 어머니는 큰 양푼에 밥을 비벼 큼직하게 김밥을 말아주셨지요. 요즘처럼 재료가 화려하진 않아도 시금치랑 단무지, 계란 지단만 들어가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어요.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이 터라 응원하고 나서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가족들과 나누어 먹던 그 김밥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목이 메일 때쯤 마시던 달큼한 사이다 한 모금까지 더해지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답니다. 미용실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다들 그 시절 김밥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으시곤 해요. 특별한 요리보다도 식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나누던 그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거겠지요. 오늘 저녁엔 옛 생각 하며 김밥 몇 줄 말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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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논산훈련소 그 연병장,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스무 살에 논산에서 훈련받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힘들었지만 그때 만난 전우들이 평생 친구가 됐어요. 지금은 다들 연락이 끊겼지만, 가끔 그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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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과 돈

처음으로 은행에 통장을 만들던 날

월급을 손에 쥐고 처음 은행에 갔던 날을 기억합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 또 보고 했지요. 그 작은 통장 하나가 참 든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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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조선소 용접불꽃 속 내 청춘

아따, 고마 세월 참 빠르다. 스무 살 넘어 영도 조선소에 발 디뎠으니, 용접봉 잡은 지 어연 오십 년이 넘었네. 쇠 깎고 망치질 소리에 귀 떨어질 뻔했데이. 뜨거운 불꽃 속 종일 씨름했지만, 그게 또 우리 젊음 아이겠나. 고생스러워도 열정 하나로 버텼지. 작업복 기름때 묻히고 땀 흘려도, 동생들이랑 농담 따먹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던 재미가 쏠쏠했어. 실수하면 한소리 했다가도 '괜찮나?' 묻는 정이 있었지. 불꽃 속에서 쇠 녹여 배 한 척 만들 때믄 가슴이 벅차오르데. 우리 손으로 만든 배가 바다로 나갈 때, 내 새끼 보내는 마냥 뿌듯했심더. 가족 먹여 살린 자부심, 그거 하나로 살았데이. 이제 은퇴했지만, 아직도 용접봉 잡던 손맛이 생각난다. 힘들었지만,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네. 그때는 몰랐는데, 그 시절이 내 인생 가장 뜨겁고 찬란한 시간들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모를 기다, 우리 때는 다 그렇게 살았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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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유행

어머니의 고운 김밥 한 그릇

운동회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가만히 설레곤 해요. 종로에서 나고 자란 내게 운동회는 일 년 중 가장 화려하고 기다려지던 축제였지요.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가 고소하게 싸주시던 김밥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진동을 했답니다. 양장점을 하며 평생 예쁜 색과 옷감을 찾아다녔지만, 그 시절 어머니가 말아주신 김밥 단면만큼 곱고 정갈하던 건 없었어요. 노란 계란 지단과 붉은 당근, 초록 오이가 어우러진 모양이 꼭 고운 비단 타래 같았지요.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 한구석에서도 어머니가 길게 펼쳐주신 알록달록한 보자기 하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했답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풍기며 식구들과 웃음꽃을 피우고 나눠 먹던 그 맛이 지금도 아련해요. 살면서 참 근사하고 맛난 음식을 많이 접해봤지만, 그날 따스한 햇살 아래서 식구들과 다정하게 먹던 김밥 한 알이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하고 아름다웠던 음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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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와 이웃

옛날 이웃이 정말 더 좋았을까요? 저는 반반입니다

정이야 많았지요. 그런데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게 꼭 좋기만 했나 싶어요. 참견도 많았고 시집살이 소문도 동네가 다 알았으니까. 좋은 것만 기억하는 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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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 이야기

옛날이랑 다른 요즘 세상, 재밌네유

요새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참 신기하고 또 놀라울 따름이여유. 내가 어렸을 적엔 해 질 녘 골목에 애들 죄다 모여서 땅따먹기 하고, 밤 되면 온 동네가 고요하니 별만 쏟아졌는디. 지금은 환하게 불 켜진 빌딩 숲에, 사람들 손에 다 작은 기계 들고 뭐 그리 바쁘게들 움직이는지 원. 옛날엔 서울 올라와서 이것저것 안 해본 일이 없었으니께, 그래도 변화라면 변화는 내가 제일 먼저 몸으로 느꼈지유. 공장에서 밤샘도 해보고, 장터에서 채소도 팔아보고... 그때도 아침 일찍부터 해 지고 나서까지 바빴지만, 지금 사람들 바쁜 거랑은 또 다른 바쁨인 것 같어유. 뭘 그렇게 손 안에 쥐고 다들 집중하는지, 지나가다 보면 궁금할 때가 많어유. 그래도 다 좋게 바뀌는 거 아니겠슈? 덕분에 멀리 있는 자식들 얼굴도 실시간으로 보고, 모르는 것도 척하면 척 금방금방 찾아볼 수 있으니께 이만하면 살기 좋은 세상인 건 맞어유. 우리 때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지니,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그랴유. 근디 가끔은 그 옛날, 옆집 순이네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던 그 정 많던 시절도 그립긴 해유. 다들 자기 앞가림 하느라 바빠서 옆도 못 돌아볼 만큼 각박해진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솔직히 있쥬. 그래도 뭐, 다 나름대로 사는 방식이 있는 거니께, 내가 너무 옛날 사람 생각만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허허. 이래저래 요즘 세상, 참 볼 거 많고 배울 거 많아서 재밌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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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와 이웃

정겨웠던 우리 동네 사람들

그때는 말여, 우리 동네 시장통이 참말로 북적였제. 나는 그 한켠에서 분식집을 했잖여. 아침마다 김밥 재료 준비하믄 동네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어. '말자씨, 오늘도 일찍 나왔네!' 인사 건네면 나도 반갑게 화답했지. 밥 먹으러 온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하루 사는 낙이었어.옆집 채소가게 아주머니는 시든 채소를 싸게 주시고, 건어물집 아저씨는 명절마다 멸치를 챙겨주셨어. 숟가락 하나 빌리러 가도 없는 게 없고, 급한 일 있으면 서로 발 벗고 나서 도와주고 그랬지. 이웃사촌 아니겄어? 우리 분식집 음식도 그 정 덕분에 더 맛있었어.요새는 옆집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산다드만. 그래도 옛날 생각 하믄 그 시절이 그립고, 그 사람들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함께 웃고 울던 정 덕분에 내가 이리 맘 편히 살아온 거 아니겄어. 참 고마운 시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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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예전 직장이 더 힘들었냐고요? 저는 지금이 더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 때는 몸은 고돼도 마음은 단순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경쟁이며 눈치며 훨씬 복잡하게 사는 것 같아요. 무조건 우리 때가 힘들었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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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와 이웃

고무줄놀이

신나게 고무줄놀이하고 재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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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양육

매를 들었던 게 옳았는지, 지금도 미안합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어요. 다들 그렇게 키웠으니까. 그런데 자식이 다 커서 그때 이야기를 하는데, 마음이 아프더군요. 지금 방식이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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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내 인생의 운전대

아침 댓바람부터 버스 시동 걸고 차고지 나설 때면, 깜깜한 새벽 공기가 그리 시원했지예. 울산 방어진 골목 누비며 사람 태우고 내리다 보니, 내 인생 절반 가까이를 운전대 잡고 보냈더라고요. 그 시절이 엊그제 같구마는. 출근길 회사원, 학생, 시장 아지매들까지 참말로 별의별 사람 다 만났지예. 매일 타는 단골들은 눈빛만 봐도 통했으니께. 억수로 급한 아지매가 '아저씨예!' 하면 웃으며 액셀 한 번 더 밟아주곤 했다 아입니꺼. 버스 기사가 힘들고 고된 직업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는 생각에 늘 어깨가 으쓱했지예.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됐어도, 식구들 얼굴 보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어요. 버스 운전은 제 인생 전부나 다름없었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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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과 돈

첫 월급 받던 날, 어머니 내복부터 샀습니다

1971년 겨울이었습니다. 공장에 취직해 첫 월급을 받았는데, 봉투에 담아 건네주더군요.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어머니 내복이었습니다. 그해 겨울 어머니는 변변한 내복 한 벌이 없으셨거든요. 시장에 가서 내복 한 벌을 사드렸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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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명절, 시장바닥 잔치였지예

명절이라 카믄, 마, 그기 돈벌이도 돈벌이지만은 온 동네 잔치였제. 설 대목 추석 대목이라 카믄 시장바닥은 새벽부터 해질 때까정 사람 발 디딜 틈도 없었심더. 그 땐 다들 손수 해묵을라꼬 장 보러 나오이까네, 이모야들 지갑은 좀 가벼워도 맘은 든든했제.아침 일찍부터 문 열고 온갖 전이며 나물, 과일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팔았제. 뻥튀기 기계 소리 왁자지껄하고, 생선 비린내랑 고소한 전 냄새가 막 뒤섞여가꼬 진동을 했심더. 밤늦게까지 불 켜놓고 장사하믄, 그날 팔았던 돈 세는 재미도 쏠쏠했제. 명절에 한바탕 벌고 나믄 몇 달 살림 걱정은 좀 덜었심더.시장 일이 그래 바빠도, 집에는 또 명절 음식 한다꼬 어무이가 난리였제. 온 가족이 모여 앉아가 전 부치고, 송편 빚고, 손끝에 밀가루 묻히고 하하호호 웃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더. 그땐 뭐, 지금처럼 배달음식이 있나, 식당이 있나. 다 집에서 해묵는 기 제일이었제.요새는 마트 가면 다 돼있는 거 사다가 차례상 올리기도 하데. 시대가 변한 만큼 명절 풍경도 많이 바뀐 것 같심더. 그래도 그 시절, 온 식구 모여 땀 흘리면서 음식 준비하고 정 나누던 그 따뜻한 마음만은 변치 않는 거 같심더. 그기 바로 명절의 진짜 맛 아니겠심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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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자랑

우리 세대가 잘한 일? 저는 '악착같음'이라 봅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한 칸 마련하고. 그 악착같음 하나는 자부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놓친 것도 많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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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자랑

내 손으로 만든 장롱, 딸이 아직도 씁니다

목공소를 하며 딸 시집갈 때 장롱을 직접 짜 줬습니다. 밤새 대패질을 했지요.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롱을 쓴다니, 목수로서 그만한 보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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