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의 약속
눈이 허옇게 내리는 날이면 영락없이 옛날 생각이 납니다. 젊은 날,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숨 참고 물질하다가 뭍으로 올라올 때면 눈발이 흩날리곤 했지요. 그 시절엔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자식들 입에 풀칠하느라 앞만…
1943년생 · 제주 서귀포
제주 해녀로 물질을 했습니다. 바다와 고향 이야기가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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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허옇게 내리는 날이면 영락없이 옛날 생각이 납니다. 젊은 날,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숨 참고 물질하다가 뭍으로 올라올 때면 눈발이 흩날리곤 했지요. 그 시절엔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자식들 입에 풀칠하느라 앞만…
옛날에는 참 부지런도 떨어야 했어. 바다에 나가 물질하고 돌아오면 손발이 꽁꽁 얼어붙었는데, 그럴 때 마당 구석에서 연탄불 갈던 기억이 생생혀. 집집마다 매캐한 연탄 냄새가 골목 가득 피어오르던 그 시절이 참 엊그제…
골목길 돌아나가다 보면 어디메선가 구수하고 달달한 냄새가 코를 찔렀주사. 장날만 되면 뻥이요 하고 소리 나던 그 뻥튀기 아저씨네 앞에는 어김없이 동네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앉았어우다. 옥수수 한 되박 들고 와서 펑…
국민학교 시절 동네 어귀에 있던 빨간 우체통은 참 고마운 물건이었어. 육지로 떠난 삼춘한테 소식 전할 때도, 멀리 사는 친구한테 편지 한 장 보낼 때도 그 녀석 배가 볼록해지도록 집어넣곤 했지. 까막눈이던 우리 어머…
옛날 생각이 갑자기 나네. 우리 어릴 적 학교 다닐 때는 교실마다 시커먼 난로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어오. 집에서 싸 들고 간 양은 도시락을 난로 위에 층층이 포개어 올려두곤 했지오. 오전 내내 공부하다 보면 난로 위…
숨비소리 거칠게 내뱉던 물질 끝나고 집에 오면, 마당 평상에 대자리 하나 펴는 게 낙이었어. 낮에는 볕이 뜨거워 숨이 턱턱 막히다가도 밤만 되면 마당에 시원한 바람이 싹 돌았지. 물에 젖은 머리 슬슬 말리면서 평상에…
골목길 지나다니다 보면 동네 전파사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던 그 시절이 생각나. 까만 화면에 지지직 소리가 나도 그저 신기해서 다들 눈을 떼지 못했지. 물질 끝나고 지친 몸으로 지나가다 뉴스나 드라마 한 토막 보며 …
요즘처럼 바람이 매섭게 불고 수은주가 뚝 떨어질 때면, 젊은 날 방 한구석을 훈훈하게 채우던 연탄불 생각이 절로 난다. 물질 끝나고 덜덜 떨며 집에 돌아오면 구멍 열 개 뚫린 검은 연탄에 불을 지피는 게 하루 마무였…